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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인공지능 관련학과에 오려는 학생들을 위한 글

※ 이 글은 22년 여름방학 즈음에 쓰인 글입니다. 지금은 학과의 상황이 다소 달라졌습니다. 저 역시 몇 학기를 더 보내며 학과에 대한 감상 및 소회가 무던히도 변하였음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학문을 다루는 새로운 학과라서 그런지 학기를 거듭할수록, 한 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더 나은 학과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연후로, 이하의 글은 많은 수정이 필요해 보이나 일단은 남겨둡니다. 그저 22년 여름까지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는 글

 최근 들어 인공지능 관련 학과가 여러 대학에서 우후죽순처럼 신설되고 있습니다. 대략 21학년도부터 중앙대, 시립대, 인하대, 숭실대, 연세대 등등 대학마다 많게는 60명에서 적게는 20명 정도의 학생들을 새롭게 뽑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서울과학기술대에서 21년 신설된 인공지능응용학과에 1기로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학부 과정에서부터 인공지능을 중점으로 다루는 학과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과학기술대 UnivSeal

 

 저 같은 경우, 입학할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인공지능응용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정시생이어서 비교적 학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도 하였고, 애당초 컴퓨터공학과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라는 분야에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배우고 나니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다행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거나 그런 문제는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동기들도 있었지요.

 

 사실 모든 학생이 자기 전공에 만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수험생이 얻을 수 있는 정보야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고, 지망하는 전공의 관계자가 주변에 있지 않은 이상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예측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직 어린 학문인 인공지능 분야의 경우 관련된 정보는 더욱 적을 것입니다. 특히 학부생의 입장에서 쓴 글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제가 여태까지 경험한 인공지능 관련 학과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자기소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서울과학기술대 인공지능응용학과에 21학번으로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학점을 조금 많이 챙겨 들어 현재 3학기를 수료하였지만 3학년입니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고 있습니다. 수강학점은 인공지능 관련 과목을 18학점, 컴퓨터공학은 6학점을 수강하였습니다. 아직은 초라한 수준이지요. 구체적인 평점을 말씀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제법 높은 편입니다. (학과 공부를 성실히는 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첨가한 문장입니다.)

 

 저 역시 아직 배움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미흡한 도움조차 필요한 학생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은 슬슬 수시 원서 접수를 생각할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몇 분이 이 글을 볼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모든 과목을 다 배우고 글을 쓰다 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므로 졸속이나마 되는대로 글을 한번 써서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기실 예전부터 이와 같은 글을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리한 여름 방학을 지나는 와중 갑자기 쓰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였기도 하고 말입니다. 경험상 글은 써야겠다 싶어서 글을 쓸 때보다, 쓰고 싶어서 글을 쓸 때 훨씬 더 잘 쓴 글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관련 학과에서 배우는 과목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상상관(인공지능응용학과 건물)

 

 아마 인공지능 관련 학과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여러 대학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커리큘럼부터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보시는 분이라면 뭐가 뭔지 감을 잡기가 어려우셨을 텐데요, 저희 학과를 기준으로 어떤 과목을 배우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인공지능 관련 학과가 배우는 과목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선형대수학, 확률과 통계, 기초 프로그래밍(C 또는 Python), 인공지능 개론 등 기초 과목을 배웁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최적화 이론, 머신러닝, 딥러닝 등을 배웁니다. 마지막으로 세부 분야인 컴퓨터 비전, 강화 학습, 자연어 처리 등을 배우면 일련의 커리큘럼이 끝나게 됩니다.

 

 아마 지금 당장은 위 과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오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크게 구분하면 수학 및 통계학 과목, 실질적인 인공지능 이론 과목, 컴퓨터과학 과목, 그리고 심화 과목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분함으로써 조금 더 감이 오셨으면 합니다. 하나씩 무엇을 배우는지 고등학교 수준에서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수학 과목부터 시작해보지요. 선형대수학은 정말 오묘한 과목이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우나,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말하자면 행렬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 보시면 됩니다. 행렬이란 여러 개의 실수를 직사각형으로 가지런하게 나타낸 일종의 표기법입니다. 선형대수학을 통해 여러 개의 수를 한 번에 계산하고, 또 그 행과 열에 의미를 부여하여 고차원의 세계와 데이터를 수학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딥러닝에서 뉴런을 다룰 때, 각 뉴런과 연관된 수십, 수백, 수천만 개의 매개변수들을 계산하는 방법론을 제공해 주지요.

 

행렬의 예

 

 확률과 통계 과목의 경우, 특히나 베이즈 통계학이 주로 사용됩니다. 베이즈 통계학이란 어떤 임의의 사건에 대하여 조건이 추가되거나 제거되었을 때, 그 확률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통계학의 한 분야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선형대수학이나 확률과 통계에 대해 제가 언급한 부분은 해당 학문의 극히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컴퓨터과학 과목의 경우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루는 방법, 자료구조나 알고리즘에 대해서 배웁니다. 자료구조 과목은 컴퓨터가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저장하고 불러오는지에 대한 과목입니다. 알고리즘 과목은 컴퓨터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판단과 연산을 조합한 다소 고차원의 알고리즘을 배우는 과목입니다.

 

 인공지능 이론에서는 KNN, Linear Regression, Multilayered Perceptron, Convolutional Neural Network 등의 알고리즘을 통해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분류하고 예측하는 그 원리를 공부합니다. 심화 과목에서는 컴퓨터 비전(인공지능이 어떻게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지)이나 자연어 처리(인공지능이 어떻게 언어를 이해하는지), 추천 시스템(넷플릭스나 왓챠가 어떻게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줄 수 있는지)을 배우게 되지요.

 

인공지능에서 수학이 중요하나요?

 

 만일 여러분이 모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그저 무작정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수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겠다면 수학 공부를 빼고서 그렇게 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무엇인가의 전문가라 함은 그 원리를 깊이 이해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수학적 개념은 인공지능의 근본 원리와 깊이 맺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만일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어 기업에 고용된다면, 아마 기업은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를 주고 인공지능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이때 최신 논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다른 사람이 써놓은 말이나 코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만 한다면 기업이 요구한 과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문의 근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그 이론을 응용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 길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남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어려워하는 학문을 공부해야 하고 그러한 학문 중에는 수학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인공지능에서 수학이 많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수학 전공자들이 사용하는 고차원적인 현대 수학보다는 인공지능 논문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극히 일부 분야만을 사용할 뿐이니까요. 

 

인공지능 관련 학과에 대한 기타 Q&A

 

  다음은 인공지능 관련 학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답해보겠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인공지능응용학과에 입학하면서 품었던 의문점에 대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썰을 풀어보는 섹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인공지능 관련 학과와 다른 학과들(컴퓨터공학과, 통계학과, 산업공학과 등) 사이의 차별점이 무엇인가요?

 여러분 중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진학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처럼 막연히 진학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위에 적어 놓은 학과들과 여러모로 저울질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사실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한데요, 바로 학과가 어떤 인재를 길러낼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각 학과의 차이가 결정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컴퓨터공학과는 컴퓨터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과입니다. 통계학과는 통계학 전문가를, 산업공학과는 산업공학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과이지요. 따라서 위 학과에서 인공지능을 다룰 수는 있지만 그것을 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본말전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인공지능 관련 학과는 인공지능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학과로, 저희 학과에서 배우는 컴퓨터과학은 인공지능을 위한 컴퓨터과학이며, 저희 학과에서 배우는 통계학은 인공지능을 위한 통계학입니다. 대략적인 수치로 나타내면 인공지능에 대해 8-90 %를 공부하고, 1-20%를 인공지능을 위한 기타 학문의 공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인공지능 학과에서 컴퓨터과학에 대해 충분히 배울 것이라 기대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입학하게 된다면 느끼시겠지만 생각보다 학과 정체성이 강한 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인공지능 연구자가 되려면 대학원 진학이 필수인가요?

 사실 인공지능 관련 학과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을 대학원에 진학시키지 않고도 인공지능 전문가로 길러내는 것입니다. 만약 인공지능 관련 학과들의 목표가 성공한다면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가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네'가 될 것이지요.

 

 현재 기업들은 대부분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석사 학위를 우대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체적으로 본인들이 추구하는 전문 능력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과 경쟁자들이 기업이 요구하는 전문 능력과 무관한 과목을 공부해야 할 시간에, 인공지능 관련 학과생은 이를 더 깊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학사 학위만으로도 다른 학과 출신 석사생까지 따라잡을 수 있게 된다면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위보다 능력이니까요.

 

네이버 랩스의 Computer Vision & Deep Learning 인턴쉽 채용 공고. 학력 조건은 없지만 석/박사 재학생을 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Q. 좋은 인공지능 관련 학과란 어떤 학과인가요?

 당연하지만 소위 말하는 간판이 좋은 학교가 좋은 인공지능 관련 학과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실없는 주장이 될 것이므로 그 이유를 차례로 한번 꼽아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좋은 학교는 학생 수준이 높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만약 교수님들 판단에 학생들이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고급 이론보다는 기초를 탄탄하게 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학생들이 뛰어나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잘한다면, 알아서 잘하기 힘든 최신 이론들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시겠지요. 기초를 탄탄하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취직을 잘하려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 즉 최신 이론을 follow up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좋은 학교는 지원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잘 모르시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학문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학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비싼 장비(주로 그래픽카드)와 비싼 데이터(질 좋고 양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초적인 구현은 구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Colab을 통해서도 충분하지만 여러분의 지식이 점점 쌓이고 더 깊은 공부를 원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래픽카드에 대한 욕심이 싹틀 것입니다. 열심히 연구해서 모델을 다 만들어서 실험만 하면 되는데 실험 결과를 다음주에 보는 것과 다음 학기에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결국 학부생들에게까지 고가의 그래픽카드를 제공 또는 대여해 줄 수 있으려면 학과에 돈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자고로 명문대일수록 여러 종류의 지원을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교 별 커리큘럼 간 차이는 그다지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는 것이야 대부분의 학교들이 비슷하게 가르칩니다. 다만, 얼마나 최신의 실용적인 논문을 다루느냐에 차이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학과 홈페이지에는 잘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덧붙여 만일 대학원에 관심이 있다면 본인이 원하는 분야를 깊이 공부하신 교수님께서 계신 학교로 진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교수님 논문의 내용은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무엇과 관련된 논문을 얼마나 내셨는지, 그리고 어떤 컨퍼런스에 제출하셨는지를 통해 교수님의 전문 분야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으니 이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치며

 

 쓰다 보니까 많이 길어졌습니다. 아직 부족한 학생으로서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은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네요. 제가 써 놓은 글들을 너무 맹신하지는 마시고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으로만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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