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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별과 기억

 어두컴컴한 새벽, 기숙사를 떠나 제1학생회관 뒷길을 빠져나오면 붕어방 위로 확 트이는 하늘과 마주하게 된다. 평소에도 영롱하다 생각했던 별들이 오늘따라 더욱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와.."하고 조그만 탄성을 내질렀다. 추석 보름을 지나 기울어 가는 달을 채 아쉬워하기도 전에 불암산 밑자락이 별빛에 젖는다. 점심 무렵 홀린 듯 내린 소나기가 하늘을 닦아둔 덕분인지, 대동제 마지막 밤의 열기가 별들을 적셔놓은 모양인지... 무슨 이유에서 저리도 총총하게 빛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선명한 오리온 자리에 눈을 빼앗겼다. 그리고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을 찾아내곤 아마도 목성이겠거니 짐작하던 와중 멀리서 다른 학우가 걸어오는 것이 보여, 마치 보면 안 되는 것을 엿보던 것 마냥 머슥하게 도서관으로 발을 옮겼다.

 

 도서관 앞에 앉아 이른 아침으로 산 빵과 커피를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별은 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쉽게 사진에 담기가 힘든 것인지를 말이다.

 

 주머니 속 카메라로 언제 어디서든 내가 본 것을 찍어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저 넓은 우주로 렌즈를 겨누고 설정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쩐지 물끄럼한 별빛이 부끄럼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들을 담아내기 힘든 공학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있기야 하겠지만 가을밤에 어울리는 감성으로 생각해보면 아마도 세상에는 그런 쉽지 않은 것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오로지 나에게 귀속된 나만의 경험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서 손꼽을 수 있는 귀중한 순간들과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영상으로 저장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 순간의 경이로움 마저 복사해낼 수는 없다. 사진이나 영상이 그 당시의 경험을 환기하는 매체로 그치면 좋으련만, 요즘 세상은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경험이 사진과 영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느낌마저 종종 받게 된다. 기록 매체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여러 이로움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남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경험에 조금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지는 않을까?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어떤 벅찬 순간이 올 때, 한 번쯤은 오히려 카메라를 집어넣고 그 순간에 집중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여유가 되는 어느 날, 핸드폰 속의 앨범을 들여다보기보단 잠시 눈을 감고 그날의 두근거림을 곱씹어 보라고 해보고도 싶다. 분명 그날의 설레는 감정도 언젠가는 시간 속에서 바래지고 닳아지겠지만, 그런 바래짐과 닳아짐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길들임'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그런 길들임 역시 나름대로 흐뭇한 내 삶의 일부이자 멋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렇게 멋지게 길든 추억이 몇 개나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우연히 감동적인 순간과 만나게 되면 그렇게 보관해 놓은 기억들이 멋대로 튀어나와 기분 좋은 황홀감에 빠지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이도 그런 순간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지는 않을까 해서 권유하는 말이다.